빈 들에 우는 새

검은 재 흩날리던 폐허의 굽은 땅에

맨손으로 쇳물 끓여 기둥을 세운 지 어언 반백 년

새벽별 이고 지며 굽은 등허리로 빚어낸 황금이련만

뉘 집 제단에 바치려 이토록 서럽게 쌓아 올렸나.

손톱 밑에 맺힌 피가 강물을 이룰 제,

이 땅의 민초들은 그것이 자식의 내일인 줄로만 알았네.

여덟 천 개 구름 봉우리, 닿지 않을 신기루가 솟은 날

온 장안이 환상에 취해 태평가 부르며 춤을 추네.

가장 높은 누각에 비단길을 넓게 깔아주려,

마을을 지키던 수호목과 백 년을 기약한 종자 곡식마저

장부를 쥔 자들은 아낌없이 제물로 내어놓는구나.

바다 건너 날아온 화려한 깃털의 객(客)들은

우리네 땀방울을 단물처럼 마시고 금빛 노래 부르더니,

찬 바람 한 점 부는 찰나에 유유히 창공을 가르네.

이 땅의 진액을 거두어 만선의 돛을 올리고

제 나라로 뱃머리를 돌리는 뒷모습이 그저 태연하구나.

객들이 떠난 빈자리, 환상의 잔치판이 엎어질 제

구름다리 떠받치던 고목들은 땔감 되어 스러지고

하늘에 닿으려 발돋움하던 흙 묻은 발목들은

허공에서 길을 잃고 속절없이 곤두박질치네.

우러러보던 하늘은 천길 낭떠러지가 되어 민초를 삼키고.

떨어진 바닥이 끝인 줄 알았더니,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엔 그림자 숨긴 사냥꾼들이 진을 쳤네.

허깨비 같은 장부로 '없는 낫'을 빌려와

바위틈에 맺힌 마지막 풀뿌리마저 사정없이 도려내니.

풍년의 약속은 핏빛 서리에 찢겨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살려달라 뻗은 손등 위로 이자(利子)의 칼춤만 매섭구나.

아아, 가뭄 든 들판에 이름 없는 들꽃만 바스라지는데

피로 지킨 국운(國運)은 이방인의 전리품 되어 바다를 건너갔네.

허상의 숫자놀음에 나라의 근간을 거저 내어주고도

합법이라 칭송하며 누구 하나 상복조차 입지 않는 기막힌 태평성대여.

검게 탄 재갈매기, 빈 둥지 맴돌며 구슬피 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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